[동네서점only]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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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문학동네
144p
9月1日2020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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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의 슬픔에 언어를 부여하는 시인
      이병률 3년 만의 신작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45번째 시집으로 이병률 시인의 3년 만에 내놓는 신작 시집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을 펴낸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는 나보다 나의 감정을 더 잘 아는 사람, 슬픔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이병률 시인이 우리에게 조용히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인사말이다.



      - 책 속으로

      남쪽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휴전선을 넘어
      남하한 한 소녀는 줄곧 직진해서 걸었는데
      촘촘하게 지뢰가 묻힌 밭을 걸어오면서
      어떻게 단 하나의 지뢰도 밟지 않았다는 것인지
      가슴께가 다 뻐근해지는 이 일을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나

      색맹으로 스무 해를 살아온 청년에게
      보정 안경을 씌워주자 몇 번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안경 안으로 뚝뚝 눈물을 흘렸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너무 벅차서라니
      이 간절한 슬픔은 뭐라 할 수 있겠나

      스무 줄의 문장으로는
      영 모자랐던 몇 번의 내 전생

      이 생에서는 실컷 슬픔을 상대하고
      단 한 줄로 요약해보자 싶어 시인이 되었건만

      상대는커녕 밀려드는 것을 막지 못해
      매번 당하고 마는 슬픔들은
      무슨 재주로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슬픔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 「슬픔이라는 구석」중에서


      함부로 내일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무서워할 것들을 수군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여전히 둥글게 좁혀 앉은 자리에 자루가 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루를 뒤집어쓰고
      오래 사랑할 것입니다
      신이 그들을 따를 것입니다

      소개의 순서가 다 끝났지만
      처음 자기소개를 시작한 사람이 다시 자기소개를 시작합니다
      계속해서 자기소개를 하느라 밤이 포개집니다
      --- 「오시는 마을」중에서


      사람은 자신의 비밀을 상세하게 닮아간다지

      그 씨 한 톨마저 없으면 우리는 쓰러지지
      자신을 설명할 길이 없지
      --- 「비밀이 없으면 우리들은 쓰러진다지」중에서


      당신 얼굴에는 당신의 아버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갑니다
      어머니도 유전적으로 앉아 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누구나 그렇듯 얼굴만으로는 고아입니다

      당신이 본 풍경과 당신이 지나온 일들이 얼굴 위에서 아래로 차곡차곡 빛납니다
      눈 밑으로 유년의 빗금들이 차분하게 지나가고
      빗금을 타고 표정은 파도처럼 매번 다르게 흐릅니다
      --- 「얼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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