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태프2호&요정3호 ]
20180718 안부





수상한소금밭 요정 3호님께


누나, 안녕하세요. 소금밭 뒷마당에서 양양과 하림씨의 노래를 들었던 게 7월 19일이니까, 제가 제주를 떠나온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네요. 소금밭 식구들은 모두 잘 지내고 계실까요. 그때 공연장을 어지럽히던 떠돌이 개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떠나올 때, 저는 책방과 소금밭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약속했었죠. 그 글은 결국 쓰다 그만두었어요. 저는 종달리가 별로 그립지 않았거든요. 영영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육지로 돌아와서도 그렇게 그립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글을 쓸 수가 없더군요. 혹시나 그리워진다고 해도,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쓸 게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될 일이니까요.


그런데 요즈음, 좁은 방에서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고 있을 때면, 가끔 제가 누워있는 곳이 침대가 아닌 책방 소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해요. 그리고 일어나면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겠죠. 밤 사이 화장실 변기에 빠져있는 지네도 보고, 매일 틀어두지만 매일 제목을 잊어버리는 재즈 CD를 올려놓고, close라고 적힌 팻말을 open으로 바꿔 걸어두겠죠. 어째서 책방의 풍경은 아직도 제게 선명할까요. 한쪽 벽을 메운 그림책들과, 김녕이니 세화와 같은 이름을 가진 바다들의 엽서를, 사려니와 다랑쉬 같은 이름을 가진 오름들의 향수를, 하르방과 유채가 수놓인 손수건을, 해녀가 그려진 마스킹테이프를, 전국 곳곳에서 보내온 독립서적들을, 손님들이 계산을 마치면 봉투에 함께 담아드리던 책갈피를, 저는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저를 스탭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시면서, 아마도 마스터님들과 누나는 제가 책방에 저만의 색을 덧대길 조금은 기대하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담이 될까봐 제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저도 살짝은 느끼고 있었어요. 매주 책방 일기를 쓰거나, 저만의 추천 서가를 만들거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알면서도 눈에 띄게 노력하지는 않았던 건- 단지 제가 게을렀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그러기엔 책방은 이미 너무 따뜻한 공간이었거든요. 세 분의 정서와 취향이, 튼튼하게 자리잡아 지은 집이었거든요.


변명이라고 생각하시겠죠,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이에요. 그때의 저는 색을 잃어버린 사람이어서, 책방에 배어있는 편안함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던 거에요.


저는 무언가를 찾는 중이었어요. 21개월이라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는 동안 잃어버린 무언가를요. 제가 뭘 잃어버렸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왠지 그곳에서라면 다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찾았냐면, 아니요. 일년이 더 지난 지금도 원래 제가 잃어버렸던 게 뭐였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전혀 아쉽지는 않아요. 대신 한 가지만큼은 새롭게 찾았다는 걸 알아서요.


책방에서 저는 이야기를 찾았어요. 외롭게 헤매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 사이에 생겨난 위로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요. 당시에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가 뭔 줄 아세요? 언니네 이발관의 <영원히 그립지 않을 시간>. 심야책방을 열 때면 틀어두고는 했던 앨범 속의 노래요. 밤이 되면 언제나 머리맡에 노래를 반복재생 시켜두고서 소파에 누웠어요. 스피커에서 새어나온 기타 소리가 위로 둥둥 떠올라서, 작업실 안을 안개처럼 채우면 저는 그 속에서 잠이 들었어요. 그 안개가 제 꿈에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었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인물들이 만들어지고, 각자의 목소리가 주어지게 된 건 육지로 돌아와서부터도 한 달 뒤의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아마 책방에서의 밤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쓰여지지 못했을 거라는 걸 저는 알아요.


앞으로도 저는 그해 여름을 가끔씩 그리워하겠죠. 5월에서 7월까지, 늦봄에서 장마로 건너가던 두 달의 시간을요. 언제까지나 잊지 않을 거라고 적진 않을게요.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가물가물해지는 기억 속에서 책방의 모습도 점차 희미해질 거에요. 검푸르게 깊던 밤하늘과, 노랗게 빛나던 전구의 불빛 모두를 잊어버리는 날이 올 거에요. 다만 제가 바라는 걸 한 가지 말할 수 있다면, 저는- 천천히 기억이 스러져 갈 시간 동안에, 우리의 책방도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낡아가기를 바라고 싶어요. 부디 좋은 밤 보내시기를,


소심한책방 스탭 2호이자 수상한소금밭 스탭 41호가







수상한 41호이자 소심한 2호 스태프 성운에게


종종 스태프 친구들이 남자 스태프도 있었어요? 묻곤 해. 그럴 때면 응 세 명 정도 있었는데 이젠 없을 거야- 하고 말해. 너도 알다시피 그 남자 스태프 중 한 명은 내 남자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기존 스태프의 친구였고, 마지막 한 명은 최성운 너였지. 전에도 썼던 이야기지만 너가 갑자기 보내온 글에서 따뜻함과 선함, 묘한 익숙함을 느꼈고 부랴부랴 3개월 할부로 소파배드를 사서 너를 만날 준비를 했지.


네가 보내주기로 한 소심한책방 스태프로서의 마지막 글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일 년째 오지 않는 글을 생각하면서 난 애써 너에게 정을 떼려 했던 것 같아. 오지 않는 글, 오지 않는 문자 답장을 기다리면서- 이곳에 그리고 내게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까지 나눠줄 마음은 없다고 생각하곤 했어. 그러곤 너와 함께했던 좋았던 시간보단 불편했던 시간을 생각하곤 했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밤에 성산알출봉 해안도로를 운전할 때면 혹은 성산일출봉 스타벅스에 갈 때면 작년 이맘때쯤 밤길을 운전해 위미로 가는 차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르곤 해.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하고, 고레에다 히로키즈 감독을 떠올리고, 너는 왓챠 이야기를 해주었지. 작년에 우리는 함께 영화를 본 적은 없었지만, 깊은 밤 혹은 쉬는 날 각자 본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지.


얼마 전 스태프 친구들과 너의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너를 개인주의자라고 설명했어. 그런데 수상한소금밭은 아무래도 일과 생활이 잘 분리되지 않고, 원룸 도미토리에서 지내는 건 숨기고 싶은 부분까지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수상한소금밭에서 지낸다는 건 철저히 개인주의가 되어야 하면서도 그렇게 될 수 없는 공간인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요즘 개인주의자 선언을 다시 읽고 있어.


그 당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불편해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너와 나, 다른 스태프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낯설기 때문에-


나는 종종 소심한책방 블로그에 있는 네가 소심한책방 스태프로서 남긴 글을 보곤 해. 그럴때면 다시 네가 궁금해져. 지난번에 어머니가 책방에 오셨을 때 성운이가 외국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디로 가려나- 가서 뭘 하려나-


그렇다고 해서 네가 막 보고 싶거나 그립진 않아. 우리는 종종 안부를 묻고 어쩌다 종달리에서 만나는 사이니까. 그래도 충분하니까. 나는 종달리에서 너는 육지에서 잘 지내다 어느 날 문득 안부를 전해줘.


수상하고 소심한 3호 미림이가



소심한 스태프2호의 소심한 기록, 연재 종료






글 소심한 스태프2호 & 소심한 요정3호

사진 소심한 스태프2호 & 소심한 요정3호

2018년 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