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태프2호 ]
20170707 제목없음





한동안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쓰지 못했다.

제주는 더웠고 또 지나치게 습했다.


비는 하루에도 너댓번씩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고 책방 앞의 돌계단은 마를 일이 없었다.

검정벌레들은 이때다 싶어 꾸역꾸역 땅 위로 기어올랐다.

열 마리, 스무 마리를 잡아도 지치지 않고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잡고 싶은 의욕마저 사라졌다.

온몸에 무기력이 비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장마였다.


이것저것 끄적대보기는 했다.

맥없이 시작한 글들은 중간쯤에서 초점을 모으지 못하고 흩어졌다.

흩어진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아서 금세 그만두었다.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니 편해졌다.

굳이 애써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게으름이라고 해도, 무기력이라고 불러도 좋다. 일단 먹구름이 끼면 지나갈 때까지 멈춘다.

우산을 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주에서 도착한 편지처럼, 양양의 노랫말처럼 텅 빈 마음을 건드려줄 무언가를.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반짝거리는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은 되지 못하니까.

좋든 나쁘든 사건이 닥쳐야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 그래야 글을 쓸 수 있다.


사실 아주 아무 일도 없던 건 아니었다.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서울에서 그랬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웃고 떠들었다.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배를 타고 바다낚시도 나갔다.

하지만 친구들이 돌아가기가 무섭게 허전해졌다.

그나마 있던 힘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것처럼.


친구들은 자주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렇다고 했다.

행복하지 않아, 라고 말하면 꼭 불행하다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았다.

늘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그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질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제주에서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어?

그렇게 말한 사람은 실제로 아무도 없었지만- 이미 제주는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가 되어버린 것 같았고, 나는 그걸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비록 그게 내 마음 속에서 만들어낸 상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서의 시간도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날이 다시 맑아질지는 모르겠다. 끝까지 무기력한 채로 돌아가게 된다면 아쉬움이 남을까.

 


글 소심한 스태프2호(최성운)

사진 소심한 요정3호

2017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