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태프2호 ]
20170617 이 책 콘서트





양양이라는 가수가 있다.

그녀는 게스트하우스 앞집에 산다. 마당이 넓은 하얀색 집이다.

종종 길에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그녀와 마주친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펴놓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도 본다.

나는 제주에 오기 전까지는 그녀를 몰랐고, 지금도 잘 아는 편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짧은 사실들을 간추려볼 수는 있다.

술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

나를 '성운'이라 부르며 자신을 '양양'으로 불러달라는 사람.

아프리카에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사람.


<시옷의 세계>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김소연 시인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마음사전>이라는, 시인의 또다른 책을 다룬 적이 있다.

어지러운 마음의 상태들을 단정한 언어로 진단해내던 책으로 기억한다.

<시옷의 세계>는 더 산문적이고 더 주관적이다.

산책, 소풍, 선물- 처럼 시옷으로 시작하는 낱말들을 놓고서 자신이 떠올린 기억과 이미지들을 적어내려간다.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일은 없다.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인이 시간을 들여 주변을 바라볼 때 왠지 나도 그 자리에 멈춰서야 할 것만 같다.


가수 양양과 책 <시옷의 세계>.

둘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고, 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책방에서 '이 책 콘서트'를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궁금해졌다.

보통의 북 콘서트는 저자가 직접 나와서 책을 쓴 의도나 그때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자리라고 알고 있으니까.

한 명의 가수와 한 권의 책을 나란히 놓으면 어떤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는지,

사장님은 무슨 그림을 그리고서 이 작은 콘서트를 기획했는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당일이 되어 책방 중앙에 놓인 매대를 들어내고 의자를 세팅하던 순간까지도 그랬다.


7시를 지나 노래가 시작되었다.

기타를 치는 양양의 모습은 평소에 내가 보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마이크 앞 탁자에는 수국 한 송이와 노트 한 권, 그리고 <시옷의 세계>가 놓여 있었다.

노트에는 미리 준비해둔 멘트와 가사가 적혀있는 듯 했다.

그녀는 한 곡을 마칠 때마다 책을 펼치고 그 안의 문장을 꺼내 읽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어떤 곡을 부르기 전에는 종이와 연필을 나눠주고서 노래를 듣는 동안 각자에게 떠오른 시옷-낱말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사람들은 당황하며, 그러나 부지런히 종이를 채웠고 그녀는 종이를 모아 하나씩 차례대로 읽었다.

고개들이 조금 더 크게 끄덕여졌다. 구석에 켜둔 촛불도 따라서 흔들렸다.


책방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책 중 하나는 <언어의 온도>다.

여러 대형서점에서도 줄곧 베스트셀러를 놓치지 않는 책이다.

나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손님들이 내미는 책을 봉투에 담을 때마다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렇지. 언어에는 온도가 있다.

귓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사그라드는 음절이 있는가하면 오랜 시간 공중을 떠다니며 연소하는 음절도 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열을 흘려내어 기어이 책방 전체를 데우고 말만큼의 온도를, 그날의 언어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양양이 기타를 치며 불렀던 노래가, 그녀가 낭독했던 문장들이 완전히 기억나지 않는 때가 올 것이다.

지금까지 다녔던 많은 공연들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어차피 잊혀질 기억을 만들러 우리는 공연에 간다.

내킬 때면 언제든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서점에서 책을 집을 수 있는데도.

왜냐하면,

공연을 본다는 건 하나의 온도를 마음에 쌓는 일이다.

삶이 고단할 때 가슴을 부여잡고 기댈 언덕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다.

틀림없이 집중하고 있던 옆사람의 숨소리와, 노랗게 빛나던 전구와, 공기가 맑았던 여름의 밤을- 건져올리는 일인 것이다.



 

글/사진 소심한 스태프2호(최성운)

2017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