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태프 2호 ]
20170609 책 고르기







오늘은 꽤나 바쁜 날이었다.

오전에는 기껏해야 명도 되는 손님이 다녀갔었는데, 점심을 먹고서는 한가롭게 책을 펴들 때마다 택배기사님들이 문을 두드렸다.

총판에서 보내온 책들과 각종 독립출판물들, 하르방과 해녀가 그려진 손수건이 담긴 상자들이 작업실을 채웠다.

경기도 여주에서 편지도 왔다.

택배를 뜯고 내용물과 개수를 확인하고 엑셀에 입고내역을 기록하는 동안 오후가 갔다.


내가 책방에서 일하는 동안 일주일에 하루는 심야책방을 열기로 했었다.

지난 2주는 업무에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바빴기에, 오늘이 비로소 시작이었다.

내가 저녁을 먹을 있도록 매니저 누나가 교대해주러 왔다.

김치볶음밥을 먹고 심야책방을 찾아줄 손님들을 위한 한라토닉을 만들었다.

한라산 소주 , 토닉 워터 , 손수 만든 과일청 여덟 숟갈.

손에는 음료가 담긴 병을, 다른 손에는 얼음이 한가득 담긴 병을 들고서 책방으로 돌아갔다.


작업실 안에서는 사장님과 매니저 누나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리병을 놓고 소파에 앉는데 사장님이 책상에 올려진 <보통의 존재> 비닐을 뜯었다.

누나 그거 표지에 얼룩이 져서 반송하려고 했던 거에요- 라고 미처 말하기도 전에.

그러더니 정도면 충분한가, 하고 중얼거렸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매니저 누나가 편지봉투 하나를 건넸다.

여주에서 편지였다.


편지의 발신자는 3년째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고 했다.

어느 잡지에서 책방에 대한 글을 읽었다며 조심스럽게 서두를 떼었다.

혹여나 자신의 편지를 읽는 기분이 불편하다면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도움이 필요해서 쓴다고.

책을 정말 읽고 싶은데 자신에게는 돈도 보내줄 사람도 없다고.

권이라도 보내준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다고.

길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글자 글자를 새기듯이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자연스럽게 한숨이 쉬어졌다.


책상 위에는 다섯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김용택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그리고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

 

내가 읽은 책도,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책을 골랐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사장님이 내게도 권을 골라달라고 했다.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로 드릴 책을 고르는 데도 한참이 걸렸던 나다.

답답한 마음으로 서가 앞에 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아니, 장난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미움받을 용기> 비슷하고.

철학책은 어떨까. 담장 안에서는 생각할 시간이 많을 테니까.

강신주, 한병철... 아무래도 너무 딱딱한 같다.

그러면 여행책은? 여행 계획을 짜다 보면 군대에서도 시간이 빨리 갔었는데.

위아래로 재빠르게 훑어나가던 와중에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내가 상상한 그의 상황에서 도움이 법한 책을 고르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그런 이해를 부탁한 적이 없다.

그가 바라는 오직 읽을 있는 책을 받는 것뿐이다.

재밌는 책을 고르자.

위로도 메시지도 좋지만- 읽으면서 키득거릴 있는,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있는 책을.


대번에 권이 눈에 들어왔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GO>.

가볍다. 유치한 구석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재미는 있다.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여섯 권의 책을 상자에 담고 에어캡으로 곳을 채웠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한 기분이었다.

짧게나마 쪽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받았는데 답장을 하면 이상하니까.

막상 내용을 적으려고 하니 고민이 많았다.

은혜를 베푸는 듯한 말투여서는 안된다. 책도 아닌데 생색은 무슨.

쉽게 위로하려고 들지도 말자. 사람은 내가 계도할 대상도 감화시킬 대상도 아니다.

책을 읽고 싶지만 여건이 안되는 사람에게 책을 보내준다, 그뿐이다.

줄을 썼다가 '~ 바랍니다' 미묘하게 강요하는 느낌이 들어서 어미를 고쳤다.

책들이 OO님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가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그가 진정으로 참회하고 있는지, 형기를 마친 뒤에 어떻게 살아갈 다짐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편지를 쓰기로 결심하기까지 걸렸을 시간을,

오래 생각한 단어들을 장짜리 편지지에 눌러쓰는 뒷모습을 생각한다.

소포를 받고 나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책들이 그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글 소심한 스태프2호(최성운)

사진 소심한 요정3호

2017년 6월 18일